벌거벗은 세계사, 세계사를 뒤흔든 유혹, 매혹과 팜 파탈의 대명사인 레오파트라.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자  마성이 팜 파탈로 알려진 인물인 클레오파트라.

거대한 제국을 등에 업은 다이아몬드 수저 출신이죠.

기원전 69녀 이집트, 전 세계 부와 지식이 모이는 곳이자, 4대 문명의 발상지로 독자적인 문명을 개척해온 제국임. 

이집트의 공주 클레오파트라는 어떤 인물일까?




19세기  그려진 클레오파트라 초상입니다. 


고대 이집트, 로마 기록을 바탕으로 보면,
마케도니아 그리스 계열 백인으로 추정됨. 

클레오파타르의 미모를 묘사한 내용을 보면?!

어떤 자의 마음도 정복할 수 있는 외모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함.

로봇이나 AI도 변할 미모라고 칭송받는 거죠. 

클레오파트라의 또 다른 매력은?! 9개 언어를 구사합니다. 

이집트어조차 배우지 않던 선대 왕들과 달리,  에티오피아어, 앙랍어, 히브리어등 9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외국어도 잘 하고 소통 능력도 뛰어났던 클레오파트라. 단순한 언어 구사가 아닌  외교에 능통한 실력을 겸비하고 있음. 

클레오파트락 왕권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 있었음.






클레오파트라의 결혼 상대는 프롤레마이오스 13세, 친동생임.





열 살짜리 친동생과 결혼한 이유는? 

당시 이집트는 여성이 단독 통치하기 어려웠기에 남성과의 공동 통치가 일반적임.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위해 가족 간의 결혼이 빈번. 

근친혼은 폐쇄적 권력 유지로 비판받았지만,  일반적인 부부 개념과는 다른 관계임.

권력을 사이에 둔 정치적 동반자이자 경쟁자임.

18살의 클레오파트라는 열 살 어린 동생과 결혼하여 공동 통치를 함. 그러나 이집트 내부 상황이 심상치가 않음.

기근에 반란에, 화폐 가치 하락까지...  연이은 악재로 나라 전체에 혼란이 찾아옴.

클레오파트라는 금화 가치를 낮춰 무역을 늘리고  국고 확보를 위해 채권을 발행함.




클레오파트라를 견제하기 위해 가짜 뉴스를 이용합니다.





이후 가짜뉴스로 인해 민심이 흔들리며 반란이 시작됩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는 수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쫓겨나 타지로 피난을 가게 됨.

가짜뉴스로 권력 기반이 무너진 것.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여왕에서 도망가자 되다!
하루아침에 쫓겨난 클레오파트라는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봉착함.
그러나 국제 정세도 만만치 않게 위태로웠음.





기원전 40년경 로마가 모조리 장악함.
당시 이집트는 표면상 독립국이지만 로마의 영향 아래 위치함.

속국으로 전략할 수 있던 상황임.
자칫하면 왕좌뿐 아니라 이집트의 존립 자체도 위험했던 상황임. 그러던 중 들려온 결정적 소식은?!

클레오파트라 운명을 바꿔줄 인물이 도착함.




바로 로마 원로원과 카이사르의 라이벌 폼페이무스!

카이사르를  불편하게 지켜본 세력 바로 로마 원로원과 카이사르의 라이벌인 폼페이무스임.




그러나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도하하고  이는 반란 선언과 같은 의미임.

로마의 운명을 바꿀 로마 내전의 서막!
이집트로 도주했던 폼페이우스는  프롤레마이오스 13세에게 살해당함. 살해한 이유는 카이사르 환심을 사려고!





라이벌이지만 로마의 영웅 폼페이우스의 치욕스러운 죽음에 분노를 함.

클레오파트라는 권력을 되찾는 것을 넘어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를 찾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이집트를 지키기 위한 클레오파트라의 전략.

로마 최고 권력자 카이사르와의 만남!!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궁 안에 있던 카이사르에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클레오파트라. 목숨을 걸고 도박을 감행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늦은 밤 몸을 숨긴 채 카이사르에게 접근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쫓겨난 여왕이기에 발각되는 순간 제거의 위험이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의 편이 되어준다는 것 역시 미지수입니다. 

정치적 위기 속 유일한 기회를 잡기 위해 카이사르와 조우한 클레오파트라. 

여기서 클레오파트라의 대담함이 돋보이는 순간!! 

당시 로마 최고의 권력자였던 카이사르,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최악의 조건이죠.

그러나 매혹적인 미모와 뛰어난 언변술을 지녔던 클레오파트라.





각종 매력을 겸비한 클레오파트라. 

지성으로 카이사르와 대화가 가능했던 클레오파트라, 여왕으로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합니다. 

그렇게 클레오파트라 편에 선 카이사르가 내전에 참여해 왕좌에 복귀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

로마의 지원으로 정권을 안정시키고 왕좌를 안정적으로 유지합니다.





카이사르의 도움으로 권력을 되찾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유일의 통치자임을 과시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권력을 빼앗길 상황에서 다시 민심을 이용해 반격했으나,  든든한 지원군인 카이사르는 결국 이집트군을 격파하며 프롤레마이오스 13세는 사망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왕자를 되찾으며 실질적 통치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가 권력을 굳히게 된 계기가 카이사르의 아들을 출산 한것.





카이사리온은 작은 카이사르라는 의미입니다.  카이사리온이 카이사르의 아들임을 표명한 것.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리온을 내세우며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를 경계하며 불쾌하게 여긴 로마인들, 

더 큰 반감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데, 카이사르의 노골적인 특별 대우 때문임. 로마의 신전에 클레오파트라 황금상까지 건립함. 
외국여왕을 신격화한 용납 불가한 행동이죠. 결국 클레오파트라를 로마를 망칠 존재로 인식.

동방의 음탕한 마녀가 되었고, 노골적인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카이사르 반대파의 불만이 커지며 기원전 44년 3월 15일 클레오파트라의 존재를 위태롭게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절대 권력이 무색하게 측근들에 휩싸여. 3번이나 칼에 찔려 무참히 살해됩니다.  


로마의 권력 기반을 잃은 후 이집트 귀국을 선택,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이집트는 위태로워집니다.

차기 로마 최고 권력자 다툼의 승패에 따라 이집트 통치권을  잃을 수 있는 상황.
클레오파트라가 선택한 로마의 새로운 지도자는?










로마 영토를 두 배 가까이 확장한 가장 위대한 황제로 평가 받고 있죠.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상황인데, 

카이사르가 직접 후계자로 점찍어 놨었는데 옥타비아누스의 정치적 재능을 보고 후계자로 지목함.





그와 함께 떠오른 다른 사람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그는 갈리아 정복에 함께하며 카이사르를 대신해 로마를 수호한 인물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안토니우스가 권력 우위에 서기 위한 정복 전쟁을 계획합니다. 이집트의 군사, 재정적 지원 여부 확인을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소환합니다.




위태로운 이집트를 위해 새로운 동맹이 필요했지만, 

자신을 향한 안토니우스의 갈망을 자극합니다. 

클레오파트라가 관계주도권 장악 후 준비한 성대한 만남.






이 모든 건 정치적 생존을 위한 전략.
금 장식, 진홍빛 돛, 은으로 된 노 이런 것들이  안토니우스를 위해 충분한 부와 권력을 과시.




스스로를 미의 여신처럼 연출해 권위를 신격화함.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사용한 보이지 않는 무기는? 바로 향 피우기!!





당시 향은 금보다 더 귀했거든요.
향을 통한 심리전 전략!! 마주하기 전 자신에 대한 기대감, 호기심을 자극. 전쟁자금난을 겨냥해 이집트의 부를 과시.

안토니우스의 전쟁 자금난을 꿰뚫은 전략이죠.




연회장 내기 사건도 있는데,
클레오파트라가 한 끼 식사로 쓸 수 있다고 한 금액이  현재 가치로 약 7억원.

다음날도 똑같은 가치의 식사.




소유한 진주의 가치가 7억원.

전쟁의 후원자가 될 수 있음을 과시함.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안토니우스는  본처를 두고 클레오파트라와 재혼을 합니다?!

그렇게 3명의 아이를 출산함. 이집트를 지킬 정치적 동맹을 구축함.





이를 통해 이집트의 영광 회복을 시도,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영토 반환도 약속받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작 이후,  주변 국가와의 경쟁에서 패배하며 이집트는 핵심 영토를 상실하게 됩니다. 

약 300년 안에 이집트의 최대 영토를 회복할 기회, 로마의 영토는 공적 자산인데..  안토니우스의 개인적 행동은 로마인들의 분노를 촉발함.

로마의 민심이 돌아서자 기회를 노린 옥타비아누스.




옥타비아누스는 이집트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악티움 해전은 기원전 31년 9월 
로마 공화정이 막을 내리고 제국(제정)시대의 문을 연 역사적인 해전입니다. 


안토니우스가 내린 예삭 밖의 선택은?




유리한 육지전 대신 해전을 선택함.

식량 부족과 사기 저하로 위기에 봉착, 





이집트의 해군, 교역망, 자금력을 믿고 해전의 승산을 확신함.
전쟁의 결과는 옥타비우누스군의 맹공에 순식간에 기운이 전세. 결국 옥타비아누스에게 협상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에겐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안토니우스의 전 부인이 옥타비아누스의 친누나였던 것.



연합군의 연이은 퇴각으로 전쟁에서 패배했고, 이때 안토니우스가 마주한 충격적 소식이 있음.

클레오파트라의 사망 소문.
퇴각 이후 소통이 단절된 상황인데, 클레오파트라는 붙잡히지 않기 위해 사망 소문을 퍼트린 것.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안토니우스는 절망에 빠져 자결을 시도.

클레오파트라와 재회하지만...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안토니우스는 단순한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이집트를 수호, 지탱했던 마지막 기둥 같은 존재였던 것.

안토니우스의 죽음은 이집트의 종말을 예고함. 모든 시선은 클레오파트라에게 집중되었고, 

결국 철저한 감시 속 포로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녀는 치욕스러운 운명을 거부하고 안토니우스와 함께 묻어 달라는 편지를 남긴 채 자결을 선택합니다. 




로마의 노예로 연명하기보다 파라오로서의 자존심을 선택.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로 전락했고, 3천 년 간 이어진 파라오 시대가 종말됩니다. 

권력 독점을 위해 카이사리온을 제거합니다.

로마의 권력자를 이용해 외교 전략을 구사한 그녀에게, 요부, 악녀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는?!

정치적 경쟁자로서 부정적 묘사가 불가피한데, 탁월한 정치적 능력은 배제된 채, 미인계로 권력을 쥔 이미지로 각인 됨.

그것은 승자의 기록이 남긴 왜곡된 프레임임.




유혹의 상징이 아닌 이집트의 보위를 위해  치밀히 투쟁한 전력가, 외교가로 재평가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대와 시선이 바뀌면 해석 또한 달라진다.

출처: 벌거벗은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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