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를 해방시킨 화가, 고갱의 발자취를 따라서!
고갱을 고흐의 친구로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고갱을 집중 분석해 보기로!!
화가 고갱으로는 인지도가 낮고, 고흐의 친구로 알고 있는데,
고흐 못지않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후기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순간의 인상을 포착한 인상주의와 달리, 내면을 담아내는 후기인상주의
그런데 후기 인상주의는 내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색채를 해방시킨 고갱.
미술사에서 거의 처음으로 바다를 초록색으로 표현하고 마음의 색으로 칠하는 등,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후기인상주의를 통해 형태, 색채, 감정이 해방되며 개성이 중시되는 현대미술이 탄생합니다.
무스키아는 고갱을 본받았을 뿐.
무스키아 전시 후기를 보면, 고갱과 마티소를 잇는 화가라고.
처음으로 고갱을 만나볼 곳은??
파리 도심에 위치한 고갱의 생가,
어린 시절 페루로 이주한 고갱,
나폴레옹은 보나파르트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고갱의 아버지.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자 페루로 망명했다고 해요. 그렇게 먼 길을 따라 떠난 고갱의 가족.
하지만 안타깝게도 페루로 가던 중, 지병으로 아버지가 사망하게됩니다.
아버지가 떠났음에도 약 5년간 페루에서 머문 후, 1855년 파리로 귀국하게 됩니다.
비극적인 망명 과정, 하필 페루로 간 이유는 친척이 페루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먼 타지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귀국후에도 잊지 못한 페루에서의 시간.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페루의 영향으로 원시적인 것을 좇은 고갱.
고갱은 정착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합니다.
17세에 해군에 입대하여 세계를 항해하던 중,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버리게 됩니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혼자가 된 고갱. 고갱의 후견인이 되어준 사람은 귀스타브 아로사입니다.
고갱을 화가로 만들어 준 은인입니다.
카미유 피사로와 만나며 생긴 미술에 대한 흥미.
고갱을 미술의 세계로 이끈 것뿐만 아니라, 직업까지 소개해 준 아로사.
화가가 되기 전 증권맨이 된 고갱.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던, 그시절 육각형 인재였습니다.
증권맨으로 일하며 인상주의 그림을 수집하고 취미 생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1882년 파리 증시 폭락으로 실직하게 됩니다.?!
무너진 현실 속에서 꿈을 좇기로 결심을 합니다.
무너진 현실 속에서 꿈을 좇기로 결심을 합니다.
화가로서의 성공을 다짐하며 새로은 삶을 시작합니다. 마침내 30대에 화가가 된 고갱. 당시 기준으로는 늦은 나이에 시작을 합니다.
꿈을 펼친 장소가 어딜지!! 그 흔적을 찾으러 출동!
고갱의 발이 닿은 장소는?
파리에서 서쪽으로 약 530km 떨어진 퐁타벤.
작고 소중한 도시입니다.
과거 교역 중심의 항구도시로, 19세기 이후 예술가들이 모이며 화가의 도시로 발전합니다.
현재 60개 이상의 전시 공간이 있고, 거리를 걷다 보면 쉽게 마주하는 갤러리들.
화가들이 퐁타벤을 찾은 이유는?!
19세기 중반은 파리의 주류였던 인생주의를 벗어나고자 했던 화가들, 새로운 영감을 찾아 퐁타벤으로 이동합니다.
새로운 예술을 꿈꾸던 화가들의 집합소. 고갱도 사랑했던 퐁타벤. 도시 곳곳에 고갱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영감이 솟아오르는 거리를 지나, 상점이 모여있는 마을의 중심지가 있습니다.
퐁타벤의 풍경을 그린 고갱 작품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고갱 광장을 넘어 고갱시,
매년 7월 퐁타벤 축제를 개최하는데, 페트 데 플뢰르 다종이라고 합니다.
고갱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폴 고갱 광장.
고갱의 흔적을 찾아 볼 다음 장소는??!
퐁타벤은 아벤강을 중심으로 형성되는데 아벤강을 따라 펼쳐지는 퐁타벤의 아름다운 풍경.
고갱 작품에도 아벤강이 자주 등장합니다.
고갱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난 그림,
또 다른 고갱의 작품을 찾아서, 칠면조라는 작품을 보면, 큰 바위 사이를 흐르는 아벤강을 묘사했는데,
고갱의 작품 속 배경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어요.
이번엔 강을 떠나 시내로 가면?!
그런데 이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1903년 고갱이 사망한 이후, 재산을 매각하던 당시, 고갱의 작품을 수집하던 빅토르 세갈렌.
당시 노동자의 1일 임금인 7프랑에 낙찰. 생전에는 인지도가 없었던 고갱.
작품을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했던 상황인데요.
그때의 눈과 지금의 눈이 다르다?!
추상화에 익숙해진 지금의 눈, 추상을 그리지 않았던 19세기 중반, 사실 그대로 또렷하게 묘사했던 시기라, 추상이 익숙지 않은 시기라 가능했던 해프닝.
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제대로 걸릴 수 있었던 작품. 그당시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면 고갱이 사후에 유명해진 이유는?!
가장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타히티에서 생활할 당시, 계속 파리로 그림을 보낸 고갱.
생전에는 고갱의 작품을 알아본 사람이 없었지만,
고갱의 유작을 유럽에 소개한 볼라르.
고갱의 작품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화가는?
후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며 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피카소와 마티스 등 고갱에게 빚을 진 현대 예술가.
다음으로 도착한 전시 공간은?
1850년부터 1900년까지, 고갱에게 중요한 시기도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테오의 경제적 지원으로 아를에서 2개월간 동거를 합니다. 하지만 성격 차이로 인해 심한 갈등을 겪게되고 고흐가 귀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고흐의 귀를 고갱이 잘랐다고 주장하는데 고갱이 펜싱 칼로 고흐의 귀를 잘랐다?!
고흐의 귓불이 잘렸다는 과거의 자료가 있습니다.
최근에 진료 기록이 등장했는데
귓불이 아닌 귀 전체가 잘려있던 기록.
고갱이 귀를 잘랐다는 의혹이 생기는 이유는?!
명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취미로 펜싱을 했던 고갱, 두 사람의 잦은 싸움도 원인이었습니다.
뭉뚝한 펜싱 칼로 귀를 자르기 쉽지 않아, 귓불만 잘렸다고 알려졌을 당시는 어떻게 펜싱 칼로 귓불만 잘라. 귀 전체가 잘렸다고 알려진 후 고갱에 대한 의심이 증폭.
현재 정설은 고흐가 잘랐다로.
진실은 둘 만 아는 비밀로...!
두 화가의 관계가 드러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고흐가 그린 두 점의 의자 그림.
의자가 비었잖아요?
언제 고갱이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소박한 고흐의 의자. 담배 파이프와 담배 주머니. 해가 드는 낮.
두 사람의 정반대 성향을 암시하죠. 반대로 고갱이 고흐를 풍자한 작품이 있습니다.
고갱이 아를에 오기를 기다리며 해바라기를 그렸던 고흐.
애틋함이 담긴 해바라기인데, 고흐는 굵은 붓 터치를 선호해요. 고갱이 약간 상습범인게
자신감 없을 때 가는 붓이 등장합니다. 붓의 굵기에 담긴 고갱의 감정.
미묘했던 두 화가의 애증 관계. 그림으로 남겨진 당시의 감정.
작품 속 숨겨진 일화를 알아본 퐁타벤 박물관.
퐁타벤에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던 고갱.
작품이 아에 안 팔린 건 아니지만, 화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상태죠.
프랑스를 떠나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시 작품을 만나러 파리로 이동합니다.
고갱이 말년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제2의 고향으로 여긴 곳에서 그린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오르세 미술관입니다.
고갱에게 큰 영향을 준 페루에서 보낸 유년 시절. 그래서 원시적 환경을 추구했는데,
1891년 프랑스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섬인 타히티로 떠난 고갱.
고갱은 타히티에서 어떤 작품 활동을 펼쳤을지??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로 온 고갱은 타히티 여성과 새 살림을 시작합니다.
저시된 조각이 그 주인공입니다.
고갱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이혼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건 당연히 큰 문제인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고갱의 나이는 43세.
테하아마나의 나이는 겨우 13세.
하지만 작품에 큰 영감을 준 것은 사실임. 고갱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은?!
" 고갱의 예술성과 도덕성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
다음으로 살펴볼 작품은??
다양한 작품을 그려낸 고갱.
테하아마나를 모델로 한 작품.
고갱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이죠.
타히티에서 고갱은 행복했을까요? 점점 소원해진 두 사람의 관계.
1893년 약 2년간의 타히티 생활을 접고 파리로 돌아간 고갱.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받게 되고, 다시 타히티로 돌아간 고갱.
고갱은 그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았는데요.
먼 땅에서 듣게 된 비극적 소식, 가장 아끼던 딸 알린이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딸의 죽음에 자책하며 쉼 없이 그림을 그린 고갱. 당시 그린 최고의 걸작!!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질문이 담긴 작품입니다.
건강 악화와 빚 독촉에 더해 딸의 죽음까지 겪게 된 고갱. 생을 마감할 것을 결심한 후
인생의 모든 것을 담은 유작을 그립니다.
위의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되는 삶의 여정입니다.
정확한 분석은 없지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죠. 딸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
그림을 완성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으나 실패합니다.
고갱의 절박한 마음이 느껴지는 걸작입니다. 타히티로 떠난 고갱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던 시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폴 고갱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시간.
고갱의 작품과 삶을 돌아본 프랑스 랜선 여행.
출처: 톡파원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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